명도전. 도신부의 끝부분과 고리가 반대쪽으로 약간 휘어져 있다. 다른 사례와 마찬가지로 고리 위쪽의 탕도는 제거하면서 뒤쪽으로 약간 휘었고, 중앙부가 약간 오목하게 처리되었다. 거푸집의 결합 관계는 앞면은 우측으로, 뒷면은 왼쪽으로 밀렸으며, 전체적으로 뒷면이 위쪽으로 밀려 주출되었다. 고리를 제외하고는 주조 지느러미가 잘 제거된 편이다. 뒷면 손잡이 등쪽과 안쪽이 마모가 심하여 윤곽 뚜렷하지 않다. 뒷면 고리와 도신의 등쪽으로 산화된 철 성분이 부착되어 있다. 뒷면에 ‘行’이 확인되나 약간 뭉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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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전
시대 미상
명도전. 원형의 고리와 도신부 아래쪽을 보면 뒷면의 주범이 위쪽으로, 주조지느러미의 흔적에서 보면 도신의 후면도 좌우로 밀려 주출되었음이 확인된다. 고리의 상부에 약 7mm 정도의 탕도가 수평으로 제거된 상태로 돌출되어 있다. 손잡이는 폭이 좁게 남아있다. 고리와 도신의 아래쪽이 비교적 두텁다. 도신부의 끌 부분에 철 녹이 앞뒷면에 남아있고, 뒷면의 안쪽에 주물사가 일부 확인된다. 뒷면에 ‘行’으로 추정되나, ‘一行’, ‘二行’일 가능성도 있다. 고리의 아래 탕도를 제거하면서 탕도의 잔존부가 뒷면 쪽으로 약간 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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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전
시대 미상
方足布. 앞면에 오른쪽부터 ‘安陽’이라 주출되어 있으며, 뒷면의 중앙부에 상하 일직선, 우측에 く, 좌측에 사선 2줄이 확인된다. 기원전 257년 이후 秦國 安陽(현 河南省 安陽)에서 주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平首布가 되면 표면에 많은 문자가 주출되어 있어 주조한 도시(지방 경제의 중심지)는 물론 때로는 중량 단위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布錢은 춘추시대 중기부터 전국시대 말까지 사용된 청동화폐로서 포화, 布幣라고 한다.
비교적 전후면의 주범이 잘 합치되어 주출된 것이다. 주조지느러미가 거칠게 잔존하고 있어 주출 후 그다지 조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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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전
시대 미상
方足布. 앞면에 오른쪽부터 ‘安陽’이라 주출되어 있으며, 뒷면의 중앙부에 상하 일직선, 우측에 く, 좌측에 사선 2줄이 확인된다. 기원전 257년 이후 秦國 安陽(현 河南省 安陽)에서 주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平首布가 되면 표면에 많은 문자가 주출되어 있어 주조한 도시(지방 경제의 중심지)는 물론 때로는 중량 단위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布錢은 춘추시대 중기부터 전국시대 말까지 사용된 청동화폐로서 포화, 布幣라고 한다.
오른쪽 방족이 길게 주출되어 있는데, 이는 주조지느러미를 절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탕도의 흔적은 위쪽의 머리 상부에 있었으나 절단하여 약간 돌출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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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방울
시대 청동기시대
차란. 머리부분이 횡타원형으로 앞면은 삼각형의 투공과 4등분된 띠 모양의 내․외연의 형태이나, 뒷면은 중앙부에 작은 구멍 1개만이 있어 각각 다른 모양을 새긴 합범으로 주조되었다. 방울 내부의 舌은 1cm 정도 크기의 작은 돌을 넣었다. 옆면에 鑄出 당시의 쌍합범 흔적이 남아있고, 목 부위의 측면에도 주조 합흔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공부의 앞․뒷면에는 3열의 중앙 구획선을 중심으로 좌우0.5cm 간격으로 각 1개씩, 상하 1.5cm 간격으로 각 2개씩 긴 아몬드형의 돌기를 배치하였는데, 측면에서 볼 때 돌기의 높이가 일치하지 않는 점에서 주조시 范이 상하 방향으로 밀렸음을 알 수 있다. 목 부분의 외면에는 3개의 단이 지면서 좁아진다. 銎部 내면의 높이는 목 부분까지 올라간다. 공부의 하단에서 1.2~1.3cm 정도 위쪽에는 직경 0.8~1.0cm 정도의 구멍이 대칭으로 뚫려있다. 동일한 형태의 車鑾 토제 용범이 周原庄李鑄銅遺址에서 출토되었으며, 실물자료로는 劉家溝水庫大垷 西周中期墓와 河南省 三門峽 M2001號墓 출토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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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방울
시대 청동기시대
차란. 원형에 가까운 머리 부분이 방울이며, 내부의 舌은 1cm 정도 크기의 작은 돌을 넣었다. 방울과 방울을 둘러싼 외면의 앞․뒤면 모두 같은 모양의 구멍을 설치하였다. 옆면에 鑄出 당시의 쌍합범 흔적이 남아있고, 방울과 공부의 사이에 위치하는 목 부위의 측면에 주조지느러미 없애고 면을 매끄럽게 한 횡방향의 마찰 흔적이 잘 남아있다. 공부의 앞․뒷면에는 종방향의 중앙 구획선을 중심으로 좌우 1cm 간격으로 각 1개씩, 상하 1.5cm 간격으로 각 2개씩 아몬드형의 돌기를 배치하였는데, 측면에서 볼 때 돌기의 높이가 일치하지 않는 점에서 주조시 范이 상하 방향으로 밀렸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상하는 물론 좌우 방향으로 합범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으므로 대각선 방향으로 밀린 상태에서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銎部 내면의 높이는 방울의 외연까지 올라가 있다. 공부의 하단에서 1cm 정도 위쪽에는 가로 0.8cm, 세로 0.6cm 정도의 타원형의 구멍이 대칭하여 뚫려있다. 中國 陝西省 隴縣 출토품과 매우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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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대투겁
시대 원삼국시대
굴대투겁. ⅠB0793과 같은 거푸집에서 주조된 것이며, 한쌍의 유물로 판단된다. 표면 일부가 박리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잔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원통형의 몸체의 중앙에서 약간 위쪽에 폭 1.5cm 정도의 2단 돌대가 있으며, 평탄한 상부의 면은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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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대투겁
시대 원삼국시대
굴대투겁. ⅠB0794와 같은 거푸집에서 주조된 것이며, 한쌍의 유물로 판단된다. 표면 일부가 박리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잔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원통형의 몸체의 중앙에서 약간 위쪽에 폭 1.5cm 정도의 2단 돌대가 있으며, 평탄한 상부의 면은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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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부속
시대 원삼국시대
굴대투겁. 마차 굴대의 끝에 끼웠던 것으로서 여(軎)와 이것을 굴대에 고정하기 위해 삽입하는 쐐기인 할(轄)로 구성된다. 차축에는 꽃잎 형태의 문양이 주출되어 있는데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은 점에서 거푸집이 좌우로 밀려 주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쐐기의 삽입부가 약간 휘어져 있는데, 주조시 결함이 아닌 사용에 의해 변형된 것으로 판단된다. 동일한 형식의 것이 北京 琉璃河 西周 燕國墓地에서 출토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