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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로운 세기 초에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새 건물에 보존시설을 갖춘 수장고를 완성하고 전시실도 새로운 감각에 맞게 다시 꾸몄습니다.

그 동안에도 본 박물관은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해 왔으며, 이제 국내의 대표적인 한국기독교 박물관으로서 그리고 대학박물관으로서의 사명을 새로운 각오와 의지로 구현해 가고자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맞아 본 박물관의 설립자인 고(故) 매산(梅山) 김양선(金良善) 교수와 그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본 박물관은 평양숭실대학 출신의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였던 매산 김양선 교수가 설립·운영하던 ‘한국기독교박물관’을 1967년 기증받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로써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숭실대학교의 부속박물관으로 출범하게 되었으며, 이후 1976년 교내 부지에 박물관 단독건물을 마련하여 정식 개관하였습니다.

 

이제 2004년에 들어와 현대적 시설을 갖춘 새 박물관으로 신축, 이전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 박물관은 고(故) 김양선 교수의 기증유물을 중심으로 하여 1960년대부터 본관이 수행한 여러 유적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국기독교사자료, 실학과 개화기 문물 및 민족운동사자료, 그리고 고고·미술자료와 숭실교사자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에 새 박물관은 한국기독교역사실, 근대화와 민족운동사실, 고고·미술실, 그리고 숭실역사실 등 4개의 전시실로 꾸미게 되었습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숭실대학교의 부속기관으로서 대학교육의 보조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또한 사회교육기관으로서 지역주민 및 각급 학교의 현장학습의 장(場)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본관은 한국기독교계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서 각 교회에 한국기독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현장교육을 실시해 왔습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앞으로 각종 학술활동 및 사회교육활동 등을 통해 한국의 문화유산과 기독교문화를 보다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장 황민호

김양선과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역사

매산 김양선의 생애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설립자인 매산(梅山) 김양선(金良善)은 1907년 2월 평안북도 의주에서 김관근 목사와 백관성 권사의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매산은 아버지가 세운 중원중학교를 거쳐 선천의 신성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그리고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숭실 재학중 그는 비밀결사인 ‘청구회(靑丘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평양학생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으며,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다 투옥되기도 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월남한 매산은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그가 교회사나 고고학에 열정을 쏟기 시작한 것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부터였습니다. 이 때부터 많은 양의 자료와 유물을 수집·정리하였습니다. 그는 외할아버지 백홍준이 1870년대 말 만주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한글성경번역 작업에 참여했다는 점과 그의 집안이 한국초기 교회설립에 직접 관련되었다는 데서 한국교회사 정립에 뜻을 두게 되었습니다.

 

또 숭실전문학교 시절 양주동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찾아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의 탄생과 역사

1948년 4월 매산은 서울 남산의 옛 ‘조선선궁’ 자리에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때 남북을 오고가며 북한에 남겨둔 자료와 유물을 남한으로 반출하다가 그는 부인과 딸을 잃었습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매산의 목숨을 건 열정, 부인과 딸의 생명을 대가로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의 유물은 6·25 전쟁 중 해외로 옮겨졌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이후 한국기독교박물관이 남산에 재건립되었으나, 1967년 4월 매산은 박물관 유물 일체를 자신의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하였습니다. 오늘의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목회자와 교육가로서 많은 교회와 학교 설립에 관여했던 매산은 1954년 숭실대학 교수 부임한 이래 1970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사, 한국교회사, 고고학 등의 연구와 교육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기독교와 한국의 민족문화에 대한 매산의 열정으로 설립된 한국기독교박물관은 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밝혀주는 수준 높은 고고학 자료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각종 기독교 자료, 실학을 비롯하여 개화기의 근대화 문물, 민족운동사 자료를 소장·전시하여 사회 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MI

심벌마크

심벌마크는 완벽한 조형의 상징인 구(球)의 원형과 박물관의 대표적 유물인 청동 잔무늬 거울의 기하학 무늬를 그래픽 조형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원형의 이미지는 박물관의 대표성을 의미하고 기하학 무늬를 모티브로 한 선은 박물관의 역사와 전통을 의미 합니다. 이를 조합하여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표현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지게 하여 관람객과의 친밀감을 표현하였습니다.

국문 · 영문 혼합형 로고

국문로고의 글씨는 한국 최초의 신약전서인 「예수성교전서」의 본문에서 집자하였습니다.  이 「예수성교전서」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상징적인 유물로,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발간된 최초의 신약전서입니다. 초기 성경 번역작업에 참여하였던 서상륜(徐相崙)의 한글 글씨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연활자(鉛活字)를 주조하였고, 이 활자를 이용하여 1887년 만주 봉천에서 인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