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도
1466년(세조 2년) 제주에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를 두었다가 곧 목사(牧使)로 바꾸고, 대정(大靜)·정의(旌義) 2현(縣)을 설치하였다. 이 지도는 그때를 그린 것으로 서울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따라서 일본이 제주도의 북쪽에 그려졌다. 지형과 포구(浦口)명, 식생(植生), 10개소의 목장 및 육지와의 사이에 분포한 주요 섬, 남해안의 주요 포구·진(津) 등을 매우 자세히 표시하였다. 사방으로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유구(琉球)·안남(安南)·중국 등을 방위에 따라 표시하였고 지도의 외곽에 24방위를 표현하였다. 제작수법은 조선초기의 수법과 비슷하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는 달리 지형·산세가 정확히 표현되었다.
30
천문도
시대 조선시대
천문도
12간지와 24절기를 천체의 별과 연결시켜 그린 천문도로 황도남항성도(黃道南恒星圖)와 황도북항성도(黃道北恒星圖)로 나뉘어 그렸다. 성도(星圖) 중앙 하단에 별자리의 밝기를 7등급으로 기호화하여 표시하였으며 성도 주변에 12간지와 24절기를 표시하였다. 도광갑오내연제간(道光甲午泰然濟刊)이라는 간기가 있으나 잘 식별되지 않는다.
23
지구전후도
시대 조선시대
지구전후도
김정호가 최한기의 도움으로 만든 현대식 세계지도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오세아니아를 지구전도(前圖)로 남북아메리카를 지구후도(後圖)로 나누어 그렸다. 우리 나라에서 만든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 판본(板本)이다. 좌측 하단에 “도광갑오맹추태연재중간(道光甲午孟秋泰然齋重刊)”이란 기록으로 제작연대와 중간(重刊)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82
대동여지전도
시대 조선시대
대동여지전도
김정호(金正浩)는 약 16,200분의 1로 줄인 한국지도를 그려서 목판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인쇄하였는데, 그것을 다시 줄여 한편으로 인쇄한 약 92만 분의 1 지도이다. 이 축소판인 《여지전도》(輿地全圖)는 《대동여지도》에 비하여 지명 등이 많이 생략되었으나 전체를 한눈으로 볼 수 있어서 편리하다. 산맥의 표현방법이 큰 특징이며 산계(山系)와 수계(水系), 군현의 위치, 교통망 등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지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도 우측 중간에 조선(朝鮮)의 지형과 지리적 특성 등에 관한 설명문이 있다.
89
동국지도
시대 조선시대
동국지도
18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축적과 방위가 매우 부정확하고 동쪽이 지도의 상부가 되도록 배치한 우리 나라 전도(全圖)이다. 산맥과 하천, 군현, 진(鎭) 등과 교통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만주지방에는 요동의 봉황성(鳳凰城)과 개원(開元)을 거쳐 남서쪽으로 만리장성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의주에서 북경에 이르는 교통로도 표시되어 있다. 축적과 방위가 무시되어 있긴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를 따르고 있다.
63
여지전도
시대 조선시대
여지전도
동양식 세계지도와 서양식 세계지도를 절충하여 중국을 중앙에 두고 그린 세계지도이다. 지금까지 동양에서 그려 오던 세계지도는 중국이 세계의 전체인 것처럼 그리고 타지역은 그 존재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서양 선교사들이 그린 세계지도를 통하여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비교적 정확한 세계지도를 그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도 역시 중국과 한국을 자세히 그렸다. 아메리카주는 생략하였으며 우리 나라에 비교적 잘 알려진 러시아는 자세하고 크게 그렸다.
34
천하고금대총편람도
시대 조선시대
천하고금대총편람도
중국을 중심에 두고 주변 국가들을 간단히 표시한 중국식 세계지도이다. 지도의 해당 지역에 역사적인 내용을 기록하여 지지적(地誌的) 성격도 겸하였다. 중앙에 해안선의 윤곽을 거의 무시한 장방형의 중국을 상세히 그려넣고 동북쪽에 지형을 그리지 않은 채 조선을 표시하였다. 북으로 만리장성 밖에 송화강(松花江), 장백산(長白山), 한해(瀚海), 사막(沙漠), 북해(北海) 등의 표시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메콩강을 경계로 하고 천축(天竺), 서역(西域) 등의 표시가 있다. 동·남해중(東南海中)에는 여인국(女人國), 소인국(小人國), 대인국(大人國) 등의 전설적인 지명과 일본, 유구(琉球) 등 실재한 국명들도 표시되어 있다. 발문에 마테오 리치의 측정법(測定法)으로 일도(一度)는 250리(里)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작자는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49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시대 조선시대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지도에 나타난 지명에 역사적인 기록을 첨가하여 우리 나라의 고금(古今)을 같이 볼 수 있도록 한 역사지도이다. 이 지도의 작성연대는 지도 좌측 발문 말미에 “계축맹하(癸丑孟夏)”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현종 14년(1673년)이 된다. 지도 윤곽은 조선 전기의 유형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서 일직선상에 있고 평안도와 함경도가 남북으로 심하게 압축된 모양을 하고 있다. 서울의 도성이 축척에 관계없이 크게 그려져 있고, 경복궁과 광화문 및 의정부와 육조가 표시되어 있다. 같은 지도 안에서 주요 부분을 축척에 관계없이 크게 그리는 예는 군현도(郡縣圖)에서 읍성(邑城)을 건물배치까지 자세히 그리는 예와 비슷하다. 이 지도는 역사적인 사실과 그 사실이 발생한 지역을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지도의 영역을 개척하였다.
51
천하여지도
시대 조선시대
천하여지도
중국에서 만들어진 중국식 천하도에 우리 나라 지도를 그려 넣어 만든 것이다. 지도 상단에 4단으로 하여 청대의 북경과 남경의 직예지역과 13성(省)의 각 부(府)에서 북경과 남경까지의 이정(里程)이 적혀 있고, 말미에 “건륭정묘맹동(乾隆丁卯孟冬)”이라고 적혀 있어 지도 제작 연대가 1747년임을 알 수 있다. 강희제(康熙帝)가 기독교 선교사를 시켜서 국가사업으로 완성한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의 성과를 받아들여 종래의 중국지도를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부분은 우리 나라 고지도에서는 보기 드문 세장(細長)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지도 전체에서 보면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다. 당시 조선을 중국 귀주성(貴州省)의 한 ‘국’(國)으로 적고 있음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