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강의 노트
숭실대학 제16회(1925년) 졸업생 이규숙(李珪淑)이 생물강의시간에 작성한 필기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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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 14호
시대 일제강점기
숭실(崇實) 14호
숭전학생기독청년회 문예부에서 발간한 대학 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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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중학 졸업증서(1908)
시대 대한제국
숭실중학 졸업증서
1908년 숭실중학에서 계원식(桂元植)에게 수여한 졸업증서이다. 당시 숭실 운영에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교장이 장로교측의베어드(W. M. Baird)와 감리교측의 베커(A. L. Becker) 두 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상단의 태극기와 중간부분의 교기가 숭실의 교풍과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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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교 졸업증서
시대 대한제국
장로회신학교 졸업증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 한석진(韓錫晋)에게 수여한 졸업장이다. 중앙부터 좌측으로 교장의 성명과 교사의 성명이 표기되어 있다. 상단의 한반도 전역을 비추는 횃불 그림을 통하여 졸업생들이 복음의 사명을 다할 것을 상징하고 있다. 좌우 상단에는 요한복음 8장 12절과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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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유묵
시대 대한제국
안중근의사유묵(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보물 제569호로 지정된 안중근의사 유묵(遺墨) 4점 가운데 1점이다. 이 유묵은 의사의 민족적 기개를 엿볼 수 있는 글로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이라고 쓰여 있다. 경술년(庚戌年) 3월(三月) 여순(旅順) 감옥에서 쓰여졌음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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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유묵
시대 대한제국
안중근의사유묵(제일강산)
보물 제569호로 지정된 안중근의사 유묵(遺墨) 4점 가운데 1점이다. 1909년 10월 일본의 한국침략정책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만주 하르빈역에서 사살한 안중근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친필 유묵이다. 안의사의 민족적 기개와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글로 ‘第一江山’이라고 쓰여 있다. 좌측에 작은 글씨로 유묵을 쓴 날짜와 서명이 보이는데, 경술년(庚戌年) 2월(二月) 여순(旅順) 감옥에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왼손 4번째 손가락을 단지(斷指)한 채 손도장을 찍어 놓은 모습에서 의사의 강렬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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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유묵
시대 대한제국
안중근의사 유묵(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계정략부개진가련)
보물 제569호로 지정된 안중근의사 유묵(遺墨) 4점 가운데 1점이다. 이 유묵은 동양평화를 강조하는 글로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동양 대세 생각하매 아득코 어둡거니 뜻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들리 평화 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침략정책 안 고침은 참으로 가엾도다)라고 쓰여 있다. 안의사는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參謀中將)으로서 일본의 침략정책을 정지시키고 동양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이등박문을 사살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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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묘향산도
시대 조선시대
영변묘향산도
우리나라 고지도의 종류는 전도(全圖)·분도(分圖)·부주군현도(府·州·郡·縣圖)·도성도(都城圖)·영읍도(營邑圖)·요새도(要塞圖)·궁궐도·명승도(名勝圖) 등 다양하다. 이 그림은 명승도를 겸한 영읍도의 일종이다. 영변(寧邊) 산성과 묘향산(妙香山)을 중심으로 그린 서북지방의 관방도(關防圖)이자 명승도이다. 지도 중앙에 영변성(寧邊城)의 지형, 하천, 통로, 성읍(城邑)과 성내(城內)의 각종 시설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남문(南門)을 위시하여 서장대(西將坮)·북장대(北將坮)·관덕당(觀德堂)·철옹성(鐵甕城)·서성진(西城鎭)·육승루(六勝樓)·육주사(六柱寺)·향교 등의 웅장 화려한 건물들의 모습이 완연한 것으로 보아서 정조 연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북은 초산(楚山)과 태천(泰川)을, 남은 덕천(德川)과 안주(安州)를 경계로 한 넓은 지역에 구룡강(九龍江)과 청천강이 북서로 구비쳐 흐르고 있고, 묘향산(妙香山)의 영봉(靈峰)들이 동편에 우뚝 솟아 있다. 단원 김홍도(金弘道)가 지도제작에 크게 유의하여 팔도분도(八道分圖)와 명승도를 그린 일이 있었으므로, 이 지도도 그의 작품이 아닌가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