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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원래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인 고(故)김양선(金良善) 교수가 미군정청으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아 1948년 4월 20일 서울 남산에 있는 옛 조선신궁(朝鮮神宮)터에 '기독교박물관'과 '매산고고미술관'을 개관·운영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인하여 많은 자료가 분실되고 휴관 상태에 놓여지기도 하였으며, 1953년 휴전과 동시에 다시 개관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물관 자리가 국회의사당 부지로 결정됨에 따라 1958년 2월 28일 폐관하고 유물은 김양선 교수의 자택으로 옮겨져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새로운 박물관 신축을 계획하던 중 1967년 7월 21일 소장 자료 3,600여 점을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함에 따라 1967년 10월 10일 '한국기독교박물관'으로 새로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숭실대학교에서는 개교 70주년 기념일인 동년 10월 10일 완공된 구 채플(웨스트민스터 채플) 1층에 전시실을 마련하여 임시 개관하였다가 1976년 1월 19일 교내에 박물관 단독건물을 신축하여 정식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3년 7월 21세기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현대적 전시시설을 갖추고 과학적인 수장공간을 구비한 새 박물관으로 이전하였고 2004년 4월 그간의 소장유물과 발굴유물을 다시 정리하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으로 재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958

01.20 ‘한국기독교박물관’터가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선정되어 폐관, 유물 매산 선생 사저로 이동

1954

05. 매산, 숭실대학 사학과 교수로 취임
02. 한국전쟁 휴전 후 ‘한국기독교박물관’ 재개관

1950

11. 미제5공군과 킨슬러 선교사의 호의로 기독교박물관 진열품 일본 동경 기독교대학(I.C.U.)에 이송 보관. 아담스 선교사의 알선으로 진열품의 일부 미국 북장로선교본부에 이송 보관
06. 한국전쟁 발발로 유물 소개

1948

04.20 매산, 서울 남산 전 조선신궁 자리에 ‘한국기독교박물관’, ‘매산고고관’ 개관

1947

04.01 매산 선생 부인 한필려 여사와 막내딸 경숙, 평양에서 서울로 유물을 운반 하다 인민군에 피격 순직

1946

04. 기독교박물관을 新敎와 천주교가 공동 설립할 것을 합의. 매산, 박물관설립위원회 총무 겸 박물관장에 취임

1945

11. 매산, 미군정장관으로부터 조선신궁터에 기독교박물관 설립 사용허가 획득

1938 ~1939

매산, 신사참배 거부로 두 차례 피검 수감

1932

매산, 평양장로회신학교 입학

1928

매산, 한국기독교사 연구를 결의. 기독교 사료 수집에 착수

1927

숭실전문학교 동창 배민수, 문학린 등과 비밀결사’靑丘會’조직하고 항일운동을 전개

1926

매산, 숭실전문학교 입학

1907

02.13 매산(梅山) 김양선 목사,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 당후동에서 출생.진사 金利鍊 의 孫. 순교자 白鴻俊의 외손. 초대 목사

金灌根, 白灌聖 권사의 4남1녀 중 제3남.

1889

백홍준 일가 등 33인, 압록강변에서 언더우드(H.G.Underwood) 선교사로부터 세례 받음(‘한국의 요단강 세례’라 불리움)

1882

백홍준 · 이응찬 · 서상륜 등 초기 한국인 개종자, 로스(Ross), 매킨타이어(MacIntyre) 선교사와 함께 최초의 한글 성서인 『누가복음』 간행.

백홍준, 『누가복음』을 노끈으로 만들어 의주 반입

1874

10.09 백홍준(白鴻俊)의 부친, 로스(Ross) 선교사로부터 만주 고려문(高麗問)에서 한문성경 전해 받음. 백홍준, 한국인 최초의 개신교 수세자(受洗者)가 됨